자끄 엘륄은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대장간)에서 기독교 윤리에 대해 신선하고 신랄하게 고찰한다.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방식으로 윤리에 있어서 복음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위선을 저지른다.
첫째, 바리새적인 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종말 이전까지 결코 완전해질 수 없는 자리에 두셨다.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죄인이며 구조적이고 집단적인 죄의 현장인 세상과의 연대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처럼 죄된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채 독립적으로 완전해질 수 없다. 세상과 교회의 이원론을 고수하며 세상을 떠나 거룩해지려는 방식은 그리스도께서 지적하신 위선적 태도다.
둘째,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려는 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종말 이전까지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결코 개선되거나 완전해질 수 없게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이미'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임할 하나님 나라의 '아직' 사이에서 살아간다. 이 역설적 긴장은 그리스도인의 실존적 조건이다. 이 긴장은 어떠한 인간적 노력으로도 해소될 수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모든 시간, 모든 공간에서 이 긴장과 마주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긴장 속에서 항상 구체적이고 고유하게 주어진 삶의 과제 앞에 선다. 그리스도인은 이 긴장을 늘 몸소 체험하며 자신의 믿음을 적용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모든 시대 모든 지역의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믿음의 실존적 조건이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개선되어 완전해질 수 없는 세상을 죄가 없는 완전한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런 세상이 이루어지면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죄된 세상으로 인해 갈등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이것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오류다. 갈등은 결코 제거되지 않는다.
엘륄이 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생생하게 살아있는 영적 전투다. 그것이 '육체적' 전투가 아닌 '영적' 전투인 이유는 세상이 제시하는 방법이 아닌 그리스도인들만이 고유하게 감당할 수 있는 직무와 싸움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 세상의 보존에 참여해야 한다. 세상의 보존에 참여하는 삶은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몸으로 행동으로 증언한다. 그런데 그것은 세상이 원하는 육체적인 방식의 삶이 아니라 영적 전투의 삶이다. 엘륄은 그 하나의 사례로 1차, 2차 세계 대전때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에 열심히 동참했지만 기도하면서 성령을 의지하는 일은 행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악의 배후에 영적 실재가 존재함을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았던 것이다. 설교는 물질적 구제와 만나야 하며, 하나님의 은혜는 효과적인 정치/사회적 사역과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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